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 러셀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농구에서 [[센터(농구)|센터]]란 무엇인가를 전략적으로 정의한 사람 중의 한 명으로, 현대 농구에서 센터의 팀 수비에 대한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쓴 선수라고 볼 수 있다. 신체적인 부분을 봤을 때 신장은 비교적 평범한 편이지만[* 저 당시 프로필에 맨발 신장을 기입했음을 고려한다면 러셀은 시대불문 센터로서 작지 않은 적당한 키이다. 정확히는 206cm와 208cm가 혼용되었으나, 만 40세만 넘어도 키가 약간 줄어들기 시작하는 인체의 특성상 고령인 러셀의 키는 현역 시절보다 줄었을 것이 분명한데도 그는 어지간한 6-10~6-11인 선수들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지금보다 더 컸던 젊은 시절엔 208cm는 충분히 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러셀 시대에는 센터들이 거의 203(초창기)~208 정도였음을 고려하면 당대 기준으로는 오히려 큰 편이었던 셈.] 윙스팬은 224cm에 육박했으며, 이는 현대 농구를 기준으로도 빅맨의 이상적인 신체 조건에 해당된다.[* 일설에 따르면 러셀과 체임벌린의 스탠딩 리치가 비슷했다고도 하며, 둘이 공중에서 리바운드 경합을 벌이는 사진을 보면 실제로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물론 체임벌린이 러셀보다 훨씬 큰 맨발 216cm의 신장에 234cm의 윙스팬을 가졌음을 고려하면 제대로 서서 비교했을 땐 차이가 꽤나 날 것으로 추정되긴 하나, 해당 사진상으론 스탠딩 리치는 확실하게 판단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팔 길이만큼은 러셀이 체임벌린에게 꿇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체임벌린의 윙스팬이 더 길긴 해도 어깨너비의 차이가 있으므로, 실제 팔 길이는 둘이 비슷하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또한 하필이면 체임벌린이라는 인외 괴수와 동시대의 선수라 부각이 안 되었을 뿐, 러셀 또한 NBA 역대 센터 중 최상단에 꼽힐만한 규격 외의 운동 능력을 보유한 괴물이었다.[[http://nbamania.com/g2/bbs/board.php?bo_table=maniazine&wr_id=71920&sca=&sfl=mb_id%2C1&stx=akira|관련 내용]] 즉, 체임벌린처럼 어느 시대에서나 재앙으로 통할만한 수준의 피지컬까지는 아니지만, 현역 선수들에게 대입하더라도 충분히 극강의 수비수로 군림할 수 있을만한 신체적 능력을 깔고 간다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비록 환경의 변화로 블록이나 리바운드는 크게 떨어질 테고 달라진 환경과 룰에도 적응해야겠지만[* 근데 이건 뭐 체임벌린이라고 다를 건 없다. 체임벌린이 당시 기준으로는 공격 기술이 좋은 편이었다곤 해도 현대의 기준으로는 매우 투박한 축에 들어간다. 애당초 피지컬만으로 씹어먹을 수 있는 리그가 결코 아니니.] 센터에게 높은 활동량과 기동성, 심지어 퍼리미터 수비까지 요구하는 현 트렌드에서 충분히 강한 메리트가 있는 신체인 셈이다. 특히 정확한 타이밍의 블록 슛이 트레이드 마크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것보다 무시무시한 것은 블록 슛을 팀 전략의 바탕으로 삼아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 일명 "수비의 심리학"이라고도 하는데 간단하게 말하면, 도저히 뚫을 수 없어 보이는 블록 슛 한 번은 상대가 골밑으로 못 들어오게 하고, 그것은 상대의 필드골 성공률을 낮추므로 승리를 불러온다는 것. 그것을 바탕으로 [[센터(농구)|센터]]가 수비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모든 기본기와 움직임은 러셀이 정립했다고 보면 된다. 더 쉽게 이해하고 싶다면 만화 《[[슬램덩크(만화)|슬램덩크]]》를 펼쳐놓고 [[채치수]]의 플레이를 다시 보면 된다. 그 플레이를 1960년대부터 해왔던 것. 당연하지만 한 경기 100점의 사나이 [[윌트 체임벌린]]과 라이벌 관계였다. 하지만 그가 NBA에 데뷔한 시기가 하필이면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농구계에서도 [[흑인]]들은 수비나 리바운드 같이 눈에 띄지 않는 플레이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감독인 [[레드 아워백]]이 그의 리바운드 한 개를 2점으로 생각하라는 등 인종차별에 대해서 벽이 되어주고, 그의 능력과 인성을 알고 있는 동료들이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기사가 쓰여졌다고 경기를 거부할 정도로 끈끈한 관계를 보여줬으며, 이것은 자연히 팀워크로 이어져 우승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통산 14,552점, 21,620리바운드, 4,100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평균은 15.1점 22.5리바운드 4.3어시스트... 이건 이미 괴물 수준. 무엇보다 그의 진가인 블록 슛은 은퇴 후인 1974년이나 되어야 공식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 것도 아닌 셈. || [[파일:external/ballislife.com/bill-russell-wearing-rings.jpg]] || || [[파일:external/3219a2.medialib.glogster.com/billrussell-rings-jpg.jpg]] || 그는 커리어의 대부분을 보스턴 셀틱스에서 보냈기 때문에 보스턴에서는 그의 번호가 영구결번이 되어 있다. 미국 4대 메이저 스포츠에서 전무후무한 8연패를 하기도 했으며 NBA에서 보낸 13시즌 중 11시즌을 우승. 그중 두 번은 선수 겸 감독의 신분으로 우승했다. 또한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 감독이기도 하다. 워낙 오래된 플레이어라 경기 전체를 보기는 힘들지만 기록에서 보여지는 단점은 바로 자유투 성공률. 시도 횟수에 비해 성공률은 56.1%로 상당히 저조했다. 야투 성공률은 겉으로 보기에는 낮아보이나 빌 러셀이 뛰던시기인 1950~1960년대는 리그의 전체적인 평균 야투 성공률이 저조했고, 실제로 앞선 레전드 센터인 [[조지 마이칸]] 또한 4할대 초중반에 불과했었다. 또한 빌 러셀은 선수 생활 내내 야투 성공률 시즌 TOP 10에 4번이나 선정되었는데, 이는 역대급 센터 공격수인 [[데이비드 로빈슨]]과 같고 [[하킴 올라주원]]은 2번 [[패트릭 유잉]]은 3번으로 오히려 빌 러셀보다 그 수가 적다. 물론 공격 시도 횟수에서 차이가 나지만 로빈슨, 올라주원, 유잉 등은 센터 포지션에서 최상급의 공격수임을 감안해야 한다. 즉 겉으로 보이는 수치만 보고 빌 러셀의 공격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 빌 러셀이 팀 내 득점 2위를 한 것은 단 한 시즌뿐이고, 그 외 절반 정도의 시즌에서는 팀 내 득점 4위였다. 그리고 야투 시도 회수와 팀 내 공격 지분을 떠나 등록 선수가 100명 전후인 시대와 300-400명인 시대 사이의 단순 10위권 진입을 비교하는 것부터가 이미 불공평한 기준이다.] 일단 본인의 득점 참여도 자체가 낮았고, 그만큼 팀 동료들을 살려주는 패스에 능했음을 고려한다면 감안할만한 부분이 많다. 그는 윌트 체임벌린, [[웨스 언셀드]]와 더불어 센터치곤 어시스트가 상당히 높은 선수였으며[* 윌트 체임벌린의 문서에도 언급되지만, 그가 활동하던 당시 어시스트 기준은 굉장히 빡빡해서 패스 → 캐치 앤 슛 으로 바로 이어져야만 인정되었다. 반면 현대 NBA에서는 패스 → 캐치 트리플 스렛 → 드리블 앤 슛으로 연결되어도 기록자 주관에 따라 어시스트로 인정될 정도. 만약 빌 러셀이 현대에 경기를 뛰었다면 어시스트 수치가 더 증가했을 것이다.], 리바운드를 잡자마자 본인이 직접 드리블을 치며 속공을 전개하는 플레이에도 아주 능했다. 트레일링 역시 신체 조건과 운동 능력에 걸맞게 당대 최고 수준. 즉, 러셀은 1950~60년대 기준으로 높은 야투효율, 패스와 속공 기여, 34세 은퇴 시즌에도 평균 20리바운드 언저리를 기록한 보드 장악력으로 가져오는 세컨 찬스 창출을 고려하면 공격에서도 1인분 이상을 거뜬히 해내는 선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